
현대인의 주요 사망 원인 중 하나인 심뇌혈관질환은 수십 년에 걸쳐 누적된 혈관 손상의 결과입니다. '혈관청소 음식'이라는 표현이 인터넷에 넘쳐나지만, 혈관은 배수관처럼 한 번에 뚫리는 구조가 아닙니다. 대신 LDL 콜레스테롤, 혈압, 체중 같은 대사 지표를 개선하는 식사 패턴이 장기적으로 혈관 환경을 바꿀 수 있습니다. ESC와 AHA 같은 국제기관이 강조하는 것도 특정 슈퍼푸드가 아니라 전체 식사 구성의 변화입니다.
수용성 식이섬유가 LDL 콜레스테롤을 낮추는 원리
혈관 건강 식단에서 가장 효율적인 축은 수용성 식이섬유입니다. 수용성 섬유는 장에서 물을 머금어 젤 형태로 변하면서 담즙산 결합과 배출을 늘립니다. 그 결과 간이 콜레스테롤을 더 많이 끌어다 쓰게 되면서 LDL 콜레스테롤이 낮아지는 방향으로 작용합니다. 대표적인 식품이 귀리의 베타글루칸인데, 여러 무작위시험 메타분석에서 귀리 섭취가 총콜레스테롤과 LDL을 낮추는 경향이 보고되어 왔습니다. EFSA는 귀리 베타글루칸이 혈중 콜레스테롤을 낮출 수 있다는 건강 주장과 관련해 하루 3g 정도 섭취 같은 조건을 언급한 바 있습니다.
할머니 세대가 말씀하시던 '특정 음식이 혈관을 청소한다'는 믿음은 사실 이런 과학적 원리를 직관적으로 표현한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다만 마늘이나 레몬 같은 단일 식품이 플라크를 쓸어내리는 방식은 아니고, 수용성 섬유처럼 대사 지표에 긍정적 영향을 주는 영양소가 누적적으로 작용하는 것입니다. 귀리만이 아니라 보리, 콩류(렌틸, 병아리콩, 검은콩 등), 채소, 과일을 함께 섭취하는 방식이 더 현실적입니다. 콩류는 단백질 공급원이면서 섬유질이 풍부해 포만감을 높이고, 포화지방이 많은 육가공품을 일부 대체하는 데도 유리합니다.
실제 식단 구성 예시를 보면, 아침은 오트밀(귀리)에 베리와 견과, 무가당 요거트나 두유를 더하고, 점심은 현미나 보리밥에 채소를 듬뿍 넣고 콩이나 두부, 생선 중 하나를 선택하는 식입니다. 간식으로는 과일 1회와 견과 한 줌, 저녁은 채소와 콩 중심의 수프나 샐러드에 올리브오일 드레싱을 곁들이는 구성입니다. DASH나 지중해식처럼 심혈관 위험을 낮추는 것으로 연구와 가이드라인에서 자주 언급되는 식사 패턴들이 공통적으로 과일, 채소, 통곡, 콩, 견과 비중이 높다는 점은 우연이 아닙니다. 이는 특정 음식이 혈관 때를 벗긴다는 개념이 아니라, LDL과 혈압, 체중에 유리한 환경을 만들기 때문에 혈관에 좋다고 설명할 수 있습니다.
포화지방을 불포화지방으로 대체하는 전략
혈관 건강에서 지방은 악당이 아니라 종류와 대체 관계가 핵심입니다. ESC 예방 가이드라인은 포화지방을 불포화지방으로 대체하는 것을 권고하고, AHA도 식사 패턴 권고에서 액상 식물성 오일(올리브유, 카놀라유 등)과 견과류, 생선 같은 식품을 강조합니다. 견과류는 불포화지방, 식이섬유, 미네랄, 항산화 성분 등을 함께 제공하는 복합 패키지 식품입니다. 2023년 리뷰 논문에서도 견과 섭취가 심혈관질환 발생과 사망 위험 감소와 연관된 관찰연구 결과들을 요약하고, 지질(콜레스테롤) 개선 등 가능한 기전을 정리합니다. 2025년 메타분석과 리뷰에서도 견과 섭취와 CVD, 허혈성 심질환 사망 위험 감소 연관이 보고됩니다.
요즘 영양제가 많이 발전했지만, 가능하다면 영양제로 특정 성분을 먹는 것보다는 실제 음식으로 섭취하는 것이 더 좋다는 견해는 많은 전문가들이 공통적으로 제시하는 원칙입니다. 견과류가 바로 그런 예시입니다. '견과는 살찐다'는 걱정이 많은데, 핵심은 양(한 줌 정도)과 대체(과자 대신 견과)입니다. 같은 칼로리라도 초가공 간식 대신 견과로 바꾸면 지방의 질과 섬유질, 미네랄 구성이 달라집니다.
생선, 특히 등푸른생선은 오메가-3 지방산(EPA/DHA)의 공급원으로 유명합니다. AHA는 심장 건강을 위해 주 2회 정도의 생선(특히 지방이 있는 생선) 섭취를 권고하고, 1회 제공량 예시도 안내합니다. 오메가-3 보충제 이슈는 논쟁이 있지만, 음식으로 생선을 섭취하는 권고는 여러 기관에서 비교적 일관되게 유지되어 왔습니다. 개인의 알레르기나 임신, 중금속 우려 등은 별도로 고려해야 하지만, 일반적으로 생선은 포화지방이 많은 육류를 대체하는 좋은 단백질 공급원입니다. 올리브오일 같은 액상 식물성 오일을 조리에 사용하는 것도 트랜스지방이나 포화지방이 많은 고형 기름을 줄이는 실용적 방법입니다.
트랜스지방과 나트륨, 초가공식품을 줄여야 하는 이유
'혈관청소 음식' 콘텐츠가 설득력을 얻으려면 '먹어라'만큼 '줄여라' 또는 '바꿔라'가 같이 가야 합니다. 트랜스지방은 과거 심혈관 위험과의 관련성이 강하게 지적되어 왔고, WHO는 산업적으로 생성된 트랜스지방을 식품에서 제거하거나 대체하는 것이 비용 대비 효과가 큰 공중보건 정책이라고 강조합니다. 개인 식단에서는 트랜스지방이 많은 과자, 페이스트리, 마가린, 튀김류(제품에 따라 다름)를 줄이고, 조리 시 기름도 불포화지방 위주로 선택하는 것이 기본 전략입니다.
포화지방도 마찬가지로 0g이 목표라기보다, 포화지방 비중이 높은 식품(기름진 육류, 버터, 크림 등)을 줄이고 불포화지방(생선, 견과, 식물성 오일)으로 일부 대체하는 방향이 가이드라인에서 반복됩니다. ESC는 영양 권고에서 지중해식 또는 유사 식단 채택과 포화지방을 불포화지방으로 대체하는 원칙을 강하게 권고합니다. 혈관은 마치 '때를 씻듯' 청소되지 않지만, 악화 요소를 줄이면 손상 진행 속도를 늦추고 위험을 낮추는 방향으로 갈 수 있다는 점이 중요합니다.
나트륨 관리도 혈압과 직결되므로 필수적입니다. DASH 식사 패턴이 고혈압 관리 목적으로 개발되었고, 과일, 채소, 저지방 유제품, 통곡, 견과, 생선 위주의 구성과 함께 나트륨 제한이 포함된다는 점이 요약 논문에서 정리됩니다. 짜고 단 음식을 많이 먹는 현대인들은 국물, 찌개, 라면, 가공식품의 숨은 나트륨을 조심해야 합니다. 실용적 팁으로는 국물 남기기, 양념은 찍먹, 가공식품 영양성분표 확인 같은 방법이 효과적입니다. 첨가당도 체중 증가와 대사 지표 악화에 영향을 주므로 당류가 많이 든 음료와 가공식품을 줄이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여기에 기능성 성분으로 자주 언급되는 것이 식물스테롤 또는 스태놀(plant sterols/stanols)입니다. 여러 가이드와 리뷰에서 하루 약 2g 수준 섭취 시 LDL이 대략 7.5~12% 정도 감소할 수 있다는 설명이 나옵니다. 개인차가 존재하며, 강화식품이나 보충제 형태로 섭취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다만 이것도 혈관을 청소한다기보다 LDL을 낮추는 도구로 이해해야 하고, 기본 식단(섬유질 늘리기, 포화지방과 트랜스지방 줄이기) 위에서 보조적으로 고려하는 게 안전합니다.
혈관 건강은 단일 장기 문제가 아니라, 혈압, 콜레스테롤, 혈당, 체중, 염증이라는 대사 지표 묶음을 얼마나 안정적으로 관리하느냐의 문제입니다. 그 한가운데에 식사가 있습니다. 할머니가 말씀하시던 '혈관청소 음식'의 진실은 특정 식품의 마법이 아니라, 좋은 것을 더하고 나쁜 것을 줄이는 누적적 노력에 있습니다. 짜고 단 음식에 익숙한 현대인들이야말로 수용성 식이섬유가 풍부한 귀리와 콩류, 불포화지방이 많은 견과류와 생선, 그리고 트랜스지방과 나트륨을 줄이는 실천을 꼭 알아두고 가능한 한 많이 섭취하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출처]
PMC 논문: https://pmc.ncbi.nlm.nih.gov/articles/PMC10128075